2017년-2018년 이대로만 되면 잘될 일인데 터무니없고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될 때 우리는 버거움을 느낍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기도할 마음을 얻죠.
우리가 함께 속해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교회는 외적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각개인의 취향과 의사를 존종하고 모든 결정의 주체를 개인화 시킴으로써 교회 안에 하나의 구심점이나 중심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일례로 독자반응비평과 같은 문학해석 방법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자리를 얻게 된 지금, 문학작품에 저자의 권위를 무한히 인정했던 모더니즘(Modernism)에 반발해 저자의 의도나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意味보다는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讀者의 반응이 훨씬 중요하며, 따라서 독자는 저자와 함께 작품의 의미 산출에 동참하는 공저자 共著者 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모더니즘에서는 어떤 텍스트text가 말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는데 최대의 관심을 두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이 텍스트가 독자인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최대의 관심사로 삼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제 舊體制 의 권위는 사라지고 모든 결정권 決定權 은 '작품의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도와 상관 없더라도' 독자 개인에게 주어 지게 되는 혼선 malcommunication 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성향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약화시키고 구심점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내적인 도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교회는 물질적, 성적 타락, 표절, 성직매매, 세습등이 판을 치고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전횡과 독단이 연일 일반 신문에 기사화되며 교회 밖 사람들에게 까지도 걱정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교인은 떠나가고, 교세는 약해지고, 기독교의 소문은 흉흉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적이 언제적이었는지 아득합니다.
이 때에 주님은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순수했던 첫 신앙을 회복하려면 주 앞에 나의 죄와 교만을 내어놓고 처절히 기도해야만 한다. 우리의 눈에 ‘그렇게는 안되지, 나 아니면 안되지’ 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하나님 앞에 두는 교만이고 불순종이다.”
기도회를 제안하는 마음이 그랬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손가락 안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오랜동안 기도 손을 내려 놓았던 터라 다시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내 자신의 신앙 회복에 모두가 집중한 귀한 시간을 보내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함께 기도할 때 처음의 사랑으로, 순수했던 젊은 날로, 때묻지 않은 겸손함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 신앙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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